[공무원 한국사] 2. 국가의 형성 1.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1. 청동기 문화

 · 한반도에는 약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부터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됩니다. 고인물도 이 무렵에 나타나서 한반도의 토착 사회를 이루게 됩니다.

 · 청동기 시대의 유적은 중국의 요령성, 길림성 지방을 포함하는 만주 지역과 한반도에 걸쳐 널리 분포되어 있습니다. 한반도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함북 회령 오동리, 나진 초도, 평북 강계 공귀리, 의주 미송리, 평양시 사동 구역 금탄리와 남경, 경기도 파주 덕은리, 여주 흔암리, 충남 부여 송국리, 충북 제천 황석리, 전남 순천 대곡리 등이 있습니다.

 * 비파형 동검 : 청동기 문화는 황하 유역의 청동기 문화나 내몽골 지역의 오르도스식 청동기 문화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개성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비파형 동검의 가장 큰 특징은 비파형으로 생긴 칼날과 손잡이가 별도로 주조된 조립식이라는 점입니다. 내몽골 지역에 분포해 있던 오르도스식의 경우 조립식이 아니며, 손잡이가 비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도 역시 손잡이까지 한번에 주조하여 비파형 동검과 확연히 구분됩니다.
 비파형 동검은 만주로부터 한반도 전역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파형 동검의 분포는 미송리식 토기 등과 함께 이 지역이 청동기 시대에 같은 문화권에 속하였음을 보여줍니다.

 · 청동기 시대의 유물들은 청동기 시대의 집터를 비롯하여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 당시의 무덤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석기로는 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홈자귀 등이 있었습니다. 반달 돌칼은 곡식의 이삭을 자르는 데 쓰인 것으로 보이고, 구멍 뚫린 돌자귀는 나무를 베고 땅을 개간하는 데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 청동기로는 비파형 동검과 거친무늬 거울을 비롯하여 창, 화살촉, 방패 등의 무기와 더불어 도끼, 자귀, 송곳, 말방울, 거울, 팔찌, 비녀, 단추 등 다양합니다. 거친무늬 거울은 다뉴조문경이라고도 하는데, 거울에 끈을 단 꼭지가 많고, 표면에 새겨진 줄무늬가 거친 것이 특징입니다. 이렇게 끈을 단 꼭지가 많은 것은 이 거울이 의식용으로 많이 쓰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 토기로는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 등의 토기가 있습니다. 민무늬 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 표면에 무늬가 없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역마다 모양이 조금씩 다릅니다. 밑바닥이 편평한 원통 모양의 화분형과 밑바닥이 좁은 팽이형이 기본적인 모양이며, 빛깔은 적갈색입니다. 미송리식 토기는 평북 의주 미송리 동굴에서 처음 발굴되었습니다. 밑이 납작한 항아리 양쪽 옆으로 손잡이가 하나씩 달리고 목이 넓게 올라가서 다시 안으로 오므라들고, 표면에 집선 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주로 청천강 이북, 요령성과 길림성 일대에 분포합니다. 이 토기는 고인돌, 거친무늬 거울, 비파형 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특징적인 유물로 간주됩니다.

 · 청동기 시대에는 이전부터 주요한 생산 도구로 사용되던 간석기가 매우 다양해지고 기능도 개선되어 생산 경제도 좀 더 발달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돌도끼나 홈자귀, 괭이, 그리고 나무로 만든 농기구로 땅을 개간하여 곡식을 심고, 가을에는 반달 돌칼로 이삭을 잘라 추수하는 등 농경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농업은 조, 피, 수수, 보리, 콩 등 밭농사가 중심이었지만 일부 저습시에서는 벼농사를 지었습니다. 벼농사는 대체로 중국 남방 지역에서 한국 서남해안 지방으로 전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냥이나 고기잡이도 여전히 하고 있었지만 농경의 발달로 점차 그 비중이 줄어들었고 돼지, 소, 말의 가축의 사육은 이전보다 늘어났습니다.

 ·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는 집터 유역은 대체로 앞쪽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뒤쪽에는 북서풍을 막아 주는 나지막한 야산이 있는 곳에 우물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취락 여건으로, 오늘날 농촌의 자연 취락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집터는 넓은 지역에 많은 수가 밀집되어 취락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농경의 발달과 인구의 증가로 정착 생활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집터의 모양은 대체로 직사각형이며, 움집은 점차 지상 가옥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제주시 삼양동의 경우, 철기 시대 전기의 계급 사회를 알려 주는 대규모의 집터(마을)들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움집 중앙에 있던 화덕은 한쪽 벽으로 옮겨지고, 저장 구덩도 따로 설치하거나 한쪽 벽면을 밖으로 돌출시켜 만들었습니다. 창고와 같은 독립된 저장 시설을 집 밖에 따로 만들기도 하였고, 움집을 세우는 데에 주춧돌을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보통의 집터는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4~8명 정도의 가족이 살 수 있는 크기로, 이는 한 가족용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성은 주로 집 안에서 집안일을 담당하고 남성은 농경, 전쟁과 같은 바깥일에 종사하였습니다. 같은 지역의 집터라 하더라도 그 넓이가 다양한 것으로 보아 주거용 외에 창고, 공동 작업장, 집회소, 공공 의식 장소 등도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사회 조직이 점차 발달하였고 복잡해졌다는 것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 청동기 시대에는 생산 경제가 그전보다 발달하고, 청동기 제작과 관련된 전문 장인이 출현하였으며,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일단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잉여 생산물이 생기자, 힘이 강한 자가 이것을 개인적으로 소유하였습니다. 생산물의 분배와 사유화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빈부의 격차와 계급의 분화를 촉진하였습니다. 또 정치 권력이나 경제력에서 우세한 부족은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는 선민 사상을 가지고, 주변의 약한 부족을 통합하거나 정복하고 공납을 요구하였습니다. 청동이나 철로 된 금속제 무기의 사용으로 정복 활동이 활발해졌고, 이를 계기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분화가 촉진되었습니다.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지배자를 족장(군장)이라고 합니다. 족장은 청동기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한 북부 지역에서 먼저 등장하였습니다. 이들은 청동제 창으로 무장하고, 청동으로 장식한 말을 타고, 비파형 동검과 거울, 방울 등을 몸에 장식하고 다니면서 권위를 뽐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비파형 동검이나 거울, 방울 등은 하늘의 아들임을 과시하는 종교적 의기로 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청동기 시대는 이러한 권력자를 중심으로 소규모의 국가가 여러 곳에서 건설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대개 치소는 방어에 편리한 야산 부근에 건설하고, 주변에 토성이나 목책을 쌓고, 성책 밖에는 호를 파는 등 방어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고인돌과 선돌(입석)은 거석을 이용한 구조물로, 거석 문화의 상징입니다. 크게 보았을 때에 이집튼 마야의 피라미드, 중동 지방의 각종 석조물, 프랑스 서북주 대서양 연안 지역의 거석렬과 영국의 스톤헨지 등이 모두 이 거석 문화의 산물입니다.
 계급의 분화는 죽은 뒤에까지도 영향을 끼쳐 무덤의 크기와 껴묻거리의 내용에 반영되었습니다. 계급 사회의 발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무덤이 고인돌입니다. 그 외에도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2. 철기 시대

·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부터 철기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철은 단단하고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칼, 창, 화살촉 등과 같은 무기를 비롯하여 도끼, 낫, 괭이 등의 농기구와 철제 화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쓰임새로 만들어졌습니다.

 · 일단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업이 발달하여 경제 기반이 확대되었습니다. 쇠로 만든 호미로 제초 작업이 훨씬 수월해졌고, 보습이나 삽의 끝에 쇠낫을 붙임으로써 땅을 훨씬 더 깊이 일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철제 무기를 만들어 전투에 사용하게 되면서 부족 간의 전쟁은 더욱 빈번해졌습니다.
 한편 철기와 함께 출토되는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은 당시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보여 줍니다. 또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나온 붓은 당시에 이미 한자를 쓰고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 토기는 민무늬 토기 이외에 입술 단면에 원형, 타원형, 사각형의 덧띠를 붙인 덧띠 토기, 검은 간토기 등도 사용되었습니다.

 · 전국 각 지역에서 발굴된 집터 대부분은 반움집이며, 지상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받친 지상 가옥도 보입니다. 출입구가 달린 철(凸)자형과 작업과 생활 공간이 들어간 여(呂)자형이 있습니다. 강원도 춘천 중도, 경기도 수원 서둔동, 광주 미사동의 집터 발굴을 통해 취사용도의 부뚜막, 난방 목적의 구들이 남한에까지 널리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들은 우리나라 가옥 구조의 대표적인 특징인 온돌 시설의 원형으로서, 굴뚝은 벽면에 붙어 있고, 아궁이는 ㄱ자형으로 꺾어 집안 한가운데에서 불을 떼게 하였습니다

 · 철제 무기와 철제 연모를 씀에 따라 그때까지 사용해 오던 청동기는 의식용 도구로 변하였습니다. 청동기는 한반도 안에서 독자적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청동기 시대 후반 이후, 비파형 동검은 한국식 동검인 세형 동검으로, 거친무늬 거울은 잔무늬 거울로 그 형태가 변하여 갔습니다. 세형 동검은 중간의 돌기부가 더 아래쪽으로 내려오고, 검 하반부의 폭이 좁아져 가늘고 긴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잔무늬 거울은 동심원문, 사선으로 채워진 삼각문 등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청동 제품을 제작하던 틀인 거푸집도 전국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 널무덤은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일반적인 묘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구덩이를 파고 나무널을 안치한 뒤 널의 안팎에 껴묻거리를 넣은 형식입니다. 독무덤은 옹기 안에 사람의 뼈를 추려서 매장하는 방식입니다.
철기 시대의 패총으로는 김해, 양산, 웅천 등지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최초 발굴은 김해 패총에서 이루어졌고 주로 남해안 지역에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습니다. 양산 패총 등 일부를 제외하면 해로 상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과 출토된 중국의 화폐 등을 통해 중국이나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하였음을 보여줍니다. 패총에서 출토되는 유물들 중에는 어로와 연계되는 도구가 많아 이들의 생업 활동이 바다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았음을 보여줍니다.

 * 고인돌
  · 탁자식 : 고인돌의 전형적인 형태로 한반도 북방과 중국 동북 지방에서 주로 사용했습니다. 4개의 판석 형태의 굄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편평한 덮개돌을 얹었습니다. 유해야 매장되는 돌방을 지상에 노출시켰습니다.

  · 바둑판형 : 판석, 깬돌, 냇돌 등을 사용하여 지하에 돌방을 만들고, 뚜껑돌과 돌방 사이에 3~4개 또는 그 이상의 받침돌을 굅니다.

 · 고인돌은 지배층의 정치 권력과 경제력을 반영하였습니다. 중국의 산동, 요동 그리고 일본에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습니다. 2000년 12월에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지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 돌널무덤과 돌무지무덤
  · 돌널무덤은 직사각형의 돌관을 땅 속에 묻고, 그 안에 시체를 매장하여 둥글게 흙을 덮었습니다. 고인돌과 달리 매장 구조물의 전체가 땅 속에 묻힌 채 땅 위에는 아무런 표지물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고인돌에서 한 단계 진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돌무지무덤은 시체를 넣은 돌널 위를 봉토를 덮지 않고 돌만으로 쌓아올린 무덤입니다. 이는 삼국 시대 초기까지 제작되었습니다.

 ·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에는 사회와 경제가 발달하면서 예술 활동도 활발해졌습니다. 이 시기의 예술은 종교나 정치적 요구와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제사장이나 족장들이 사용했던 칼, 거울, 방패 등의 청동 제품이나 토 제품, 바위그림 등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청동으로 만든 도구의 모양이나 장식에는 당시 사람들의 미의식과 생활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 지배층의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으로 만든 의식용 도구에는 말이나 호랑이, 사슴, 사람 손 모양 등을 사실적으로 조각하거나 기하학 무늬를 정교하게 새겨놓았습니다. 이것들은 주술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어떤 의식을 행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흙으로 빚은 짐승이나 사람 모양의 토우 역시 장식으로서의 용도 외에도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바위 면에 새긴 바위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활기찬 생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위그림에 거북, 사슴, 호랑이, 새 등의 동물과 작살이 꽂힌 고래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고래, 그물에 걸린 동물, 우리 안의 동물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사냥과 고기잡이의 성공과 풍성한 수확을 비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바위그림에는 동심원, 십자형, 삼각형 등의 기하학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바위그림 유적은 다른 지역의 청동기 시대 농업 사회에서 보이는 태양 숭배와 같이 풍요로운 생산을 비는 제사 터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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